📑 목차
외국인 학습자의 한국어 쓰기에서 문법 오류는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문법은 언어 구조의 뼈대이며, 학습자가 문장을 ‘형식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숙달해야 하는 체계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어미 변화, 피동·사동 구분, 시제 일관성, 연결어미의 기능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외국인 학습자에게 문법은 언어 습득의 가장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본 글에서는 한국어 쓰기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법 오류 유형 중에서도 시제(Tense), 피동·사동(Passive & Causative), 그리고 연결어미(Conjunctive endings) 중심으로 그 원인과 교육적 함의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학습자의 오류를 교정 중심이 아닌 ‘발달의 지표’로 이해하고, 교사가 어떻게 수업 설계에 반영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1. 한국어 문법 오류의 특징과 학습적 맥락
1.1 문법 오류는 언어 체계 간 불일치의 결과
문법 오류는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학습자의 모국어 체계와 한국어 문법 체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주요 학습자 언어권에서는 시제, 피동, 사동의 개념이 한국어와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에 학습자가 모국어 문법을 한국어에 그대로 전이(transfer)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영어에는 피동형이 문장의 구조적 전환(passive transformation)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한국어의 피동은 동사 어미 결합 형태(‘-이-, -히-, -리-, -기-’) 로 표현된다. 이로 인해 “문이 열렸다” 대신 “문이 열었다”라고 쓰는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어미 실수가 아니라, 학습자가 한국어의 피동 개념을 아직 체계적으로 내면화하지 못한 발달 단계적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1.2 문법 오류의 인지적 특성 — 규칙 적용의 과잉과 불균형
언어 습득 과정에서 학습자는 일반화(generalization)와 과잉 적용(overgeneralization)을 반복한다.
한국어 문법의 규칙적 패턴을 학습자가 지나치게 확장 적용하면서 생기는 오류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보다 → 봤어요” 규칙을 익힌 학습자가 “입다 → 입었어요”는 맞지만 “돕다 → 돘어요”처럼 잘못 적용하거나, “먹다 → 먹었어요”를 학습한 후 “가다 → 가었어요”라고 쓰는 경우이다. 이러한 오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학습자가 언어 규칙을 추론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문법 오류는 ‘결함’이 아니라 ‘형성 중인 체계’의 산물이다. 교사는 오류를 수정하기 전에, 학습자가 어떤 규칙을 스스로 적용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언어 인식의 방향성을 파악해야 한다.
2. 주요 문법 오류 유형별 분석
2.1 시제(Tense) 표현 오류
시제는 한국어 문법에서 가장 복잡한 체계 중 하나로, 특히 과거 시제와 현재완료, 미래 시제의 구분에서 외국인 학습자의 오류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 “어제 비가 온다.” (→ ‘왔다’로 교정)
▶ “내일 친구를 만났어요.” (→ ‘만날 거예요’로 교정)
▶ “저는 이미 밥을 먹어요.” (→ ‘먹었어요’로 교정)
이러한 오류는 학습자가 시간 개념과 시제 어미 결합 규칙을 분리해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권 학습자는 현재완료(perfect tense) 개념에 익숙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시제와 상(aspect)의 표현이 별도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미 먹었어요” 대신 “이미 먹어요”처럼 불일치한 형태를 쓴다.
교사는 이러한 오류를 시제 규칙 암기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 ‘시간 개념의 언어적 표상(time conceptualization in Korean)’ 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즉,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여 현재·과거·미래 사건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제시하면 오류 교정 효과가 높아진다.
2.2 피동(Passive)과 사동(Causative) 오류
피동과 사동은 한국어 문법 교육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를 가진 영역이다. 외국인 학습자는 동사 어미 변화의 복합성 때문에, 주체와 행위의 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예시로,
▶ “저는 머리를 자랐어요.” (→ ‘잘랐어요’로 교정)
▶ “문이 닫았어요.” (→ ‘닫혔어요’로 교정)
▶ “엄마가 아이를 울었어요.” (→ ‘울렸어요’로 교정)
이러한 오류는 피동과 사동의 어미가 형태적으로 유사하면서도, 의미적 관계가 정반대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즉, 피동은 행위의 주체가 아닌 객체 중심의 시각을, 사동은 주체가 타인에게 행위를 유도하는 시각을 나타낸다.
교사는 학습자에게 문법 규칙을 설명하기보다는, ‘누가 행동을 했는가?’, ‘누가 영향을 받았는가?’라는 역할 중심 질문(role-based questioning) 을 통해 의미 차이를 인식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단순한 문법 교정이 아니라, 담화적 사고(disursive awareness) 를 키우는 교육 전략이다.
2.3 연결어미(Conjunctive endings) 오류
연결어미는 문장을 연결하고 논리를 확장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외국인 학습자에게는 의미·상황·담화 관계를 구분해야 하는 고난도 문법 요소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 “밥을 먹어서 친구를 만났어요.” (원인 관계 오류 → 순서 관계)
▶ “공부하니까 시험을 잘 봤어요.” (자연스러운 인과)
▶ “비가 오는데 우산을 안 써요.” (대조 관계 표현 필요)
이처럼 ‘-아서/어서’, ‘-니까’, ‘-지만’, ‘-(으)면서’ 등의 연결어미는 의미적 관계(원인, 대조, 순서, 조건)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습자는 대부분의 어미를 ‘단순 연결 기능’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문맥상 부적절한 결합을 시도하는 오류를 범한다.
교사는 문법적 규칙 제시보다, 의미 기능 중심 지도(meaning-based instruction) 로 접근해야 한다. 즉, 연결어미를 문법 단위가 아니라 ‘사건 간 관계 표현 도구’로 인식시킬 때, 학습자는 쓰기에서 자연스러운 담화 구성을 할 수 있다.
3. 오류 분석의 교수적 활용
3.1 오류 유형별 피드백 전략
문법 오류의 교정은 정답 제시보다 인지적 피드백(cognitive feedback) 이 중요하다. 교사는 학습자가 스스로 규칙을 재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유도 질문형 피드백(elicitation feedback)’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이 열었다” → “이 문장에서 누가 문을 열었을까요?”
“밥을 먹어서 친구를 만났어요” → “‘밥을 먹고 나서’가 더 자연스러운 이유가 뭘까요?”
이러한 질문은 학습자가 자신의 오류를 인식하고, 언어 규칙을 스스로 수정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학습자는 문법적 정확성(accuracy) 뿐만 아니라 의미 중심 표현 능력(expressive fluency) 도 함께 향상된다.
3.2 오류 데이터를 통한 수업 설계
오류 유형별 빈도와 양상을 분석하면 학습자 맞춤형 수업 설계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 초급: 조사 및 시제 오류 중심 피드백
▶ 중급: 피동·사동 중심 오류 분석
▶ 고급: 문체 일관성과 연결어미 사용 중심 피드백
이러한 단계별 피드백 시스템은 학습자의 발달 단계를 반영하는 데이터 기반 교수 설계(data-driven pedagogy) 로 기능한다. 교사는 학습자의 쓰기 데이터를 수집·분석하여 수업의 방향성을 ‘교정 중심’에서 ‘발달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다.
4. 문법 오류를 통한 언어 발달의 이해
외국인 학습자의 문법 오류는 언어 습득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 체계를 구축하는 발달적 과정이다. 오류 속에는 학습자의 사고 패턴, 인지 전략, 언어 이해 수준이 모두 녹아 있다. 따라서 교사는 오류를 ‘틀림’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의미를 탐색하는 시도’로 해석해야 한다.
한국어 쓰기 교육은 문법 규칙의 암기가 아니라, 오류를 통한 사고의 재구성(thought reconstruction through error) 을 목표로 할 때 비로소 학습자 중심의 언어 교육으로 발전할 수 있다.
5. 다음 시리즈 예고 — 조사·어미 및 문체 연결 오류
3편에서는 한국어 쓰기에서 가장 빈번하고 복합적인 오류인 조사, 어미, 문체 혼용 오류를 심층 분석한다. 특히 ‘은/는’과 ‘이/가’의 미묘한 구분, 존댓말과 반말의 혼용, 문체 일관성 붕괴 사례를 중심으로, 외국인 학습자의 담화적 오류를 다루고, 교사가 이를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